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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형성 동역학 / 경제 물리학 / 전산 물리학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

1. 시작

  1. 시작

    사람 만나기는 어렵다. 삶엔 다양한 무게의 관계가 존재한다. 작년은 많은 사람들을 만난 한 해였는데, 다른 해와는 조금 다른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었던 해였다.

    꽤 오랫동안 학계에 있었다. 어쩌면 운이 좋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 기간동안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자'로 불리기에 적당한 일종의 캐릭터가 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인생의 길은 아니니 그 쪽에 대한 개념은 옅고, 하나의 시스템을 놓고 오랫동안 관조하기에 익숙해져 있어서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의 무게중심이 묘하게 다르다. 이해하기 어려워서 바깥 사람들은 흔히 '자존감'으로 부르는 그 캐릭터는, 실은 자연에 대한 무력감과, 그 안에서 끊임없는 탐구와 관조를 통해 만들어진 개인의 프레임에서 오는 자존감과, 인지하지 못하는 미지에 대한 궁금함에서 비롯된 명랑함과, 현실을 어찌하지 못함에서 오는 우울함이 뒤얽힌 중첩상태에 가깝다.

    이러한 삶의 태도가 주는 장점이 하나 있는데, 삶의 추력을 자가발전한다는 점이다. 개인에 따라 편차가 있겠지만 많은 학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일반적인 밖의 시선을 통해 정당화할 필요를 덜 느낀다. (복장만 봐도 알 수 있다.) 부질없음과 안분지족의 감정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삶의 동력은, 확 불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작대는 군불에 가까운 열정의 형태로 나타난다. 나 또한 그 일부이니 그런 열정의 일부를 동력 삼아 살고 있다.

    전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스카우트를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작년 중순즈음 리크루팅을 위해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그 분들에게 받은 "왜 그렇게 열심히 하시냐고" 하는 물음 뒤에 이어졌던 질문 두 가지가 있다. 회사 대표냐는 질문과, 지분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최근까지 그 두 가지 물음이 스스로의 태도와 어떠한 상관 관계가 있는지 이해를 하지를 못하고 있었기에 사람들이 원하는 대답을 주지 못했었다. 대표도 아니고 지분도 거의 없다고 하자 모두들 머리를 흔들고 떠났는데, 그 분들이 주셨던 인생의 충고인 즉슨 왜 그런 곳에서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냐는 이야기였다. 그 분들이 던져 주셨던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다가 요새 들어서야 인생 퍼즐을 맞춰보며 '나는 참 어리석었구나.' 하면서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가는 중이다. 어쩐지 근자감이 들어 찾아보니 이십여년 전 중학교 시절에 해 둔 생각의 조각이 있다. (인생 전산화 1세대의 장점이다.)

    "사람마다 삶의 연료는 다른 것을 늦게 깨달았을 때의 당혹감이 관조적 시점 특유의 나이브함과 적절히 배합되어 불현듯 깨닫게 된 것이다.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고, 사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세상의 본질에 대한 궁금함의 무게감은 놀라울 정도로 가벼우며, 인생의 가치는 사람의 수 만큼 존재한다는 굉장히 단순한 사실. 사랑, 증오, 열정, 좌절의 무게는 생각만큼 가치있거나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자본은 모든 인간 활동에 가치를 매길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그 덕분에 인류는 활동이 아닌 저러한 존재 가치들까지도 계량화할 수 있다고 스스로 믿을 정도로, 놀라울만큼 자기 비하에 빠졌다."

    그러니 지금 깨닫는 여러가지 것들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중학교 시절부터 알던 점들이다. 그런데도 스스로의 행동 원리가 그 위에 서 있지 않고 역시 같은 시기에 갖게 된 이상론에 치우쳐 있는 이유는 역시 비슷한 시기에 물리학을 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의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내가 맞으니,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 이십여년이 지나 꼰대로 진화하기 전에 늦게나마 오만한 자신을 마주하고 있다. 아직 세상을 바꾸려다 세상에 맞춰 이그러진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가 되기 전이라 다행이다.

    그리하여 삶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이전까지의 삶이 무엇인가를 바꾸어 더 낫게 만들기 위해서였다면, 앞으로의 삶은 그 무엇인가들이 나를 자신들에 맞게 바꾸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다. 인생을 통해 잘못된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엉뚱한 답만 나오니 우선 맞는 문제를 먼저 정의하는 것이 먼저였다.

    흔히들 열정의 무게라고들 부르는 '몰입의 가치'가 한없이 가벼운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학자라 하나 알게 된 것도 있다. 상대성이론에 대한 한 줄 설명은 '공간에서의 물질의 최대속도는 광속' 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대물리학을 듣던 어느 밤에, 포벡터만 놓고 보면 '모든 물질은 광속으로 동일한 속도로 시공간을 달린다' 고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내고 밤잠을 설쳤다. 동일한 사실에 대한 다른 철학적 관점이 개성을 만든다. 열정의 질량은 한없이 가볍다. 열정의 무게는 배고픔 앞에서 한낱 티끌만큼의 가치도 없을 그 질량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열정의 속도가 상대론적으로 만들어낸다.

    그러니, 이젠 어느 방향으로 빛에 가까운 속도로 달려볼 지 정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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