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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감소 시대와 딥러닝
한국정보과학회 에 기고한 글.
지난 3월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게 승리를 거둔 2016년의 세상은 1996년의 세상과도, 2006년의 세상과도 많이 다른 모습이다. 이미 유행이 온지 조금 지난 딥러닝 기반 기계 학습이 사회적으로 새삼 주목되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유행에 편승하기에 앞서서 어떤 동력이 2016년 이 시기의 정보기술 중심 변화를 이끌고 있는지, 어째서 이 시점에 갑자기 기계 학습의 보편화 및 대중화가 중요한 화두가 되었는지 간단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정보통신 분야 전반의 발전은 경제적, 사회적 변화를 유도한다. 1990년대 본격적으로 진행된 컴퓨터 대중화는 급격한 사회 변화를 이끌었다. 컴퓨터는 사용 분야를 점차 넓히며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방법으로 여러 분야들을 바꿔 나갔다. 대표적인 분야는 금융이다. 1994년 뉴욕 증권 거래소의 한 달치 거래 틱 데이터는 CD 한 장에 넣을 수 있지만, 정확히 10년 후 2004년의 하루치 거래 데이터는 DVD 세 장에야 간신히 들어간다. 컴퓨터가 사용된 이후 금융은 더이상 인간의 힘으로만 관장할 수 없는 분야가 되었다. 1990년대 초의 컴퓨터가 사무 보조부터 시작해서 인간의 일을 돕는 역할을 맡았다면,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컴퓨터는 대중 보급에 힘입어 메인프레임이 아닌 사용자 수준에서도 더이상 인간이 처리할 수 없는 양의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보기술 의존적인 사회가 시작되었다.
1차 IT 사회 혁명은 메인 프레임을 이용한 대규모 연산 처리로 시작되어 1990년대 말 개인용 컴퓨터의 사무 및 여가 활동에의 보급으로 마무리되었다. 그 뒤에 바로 이어진 2차 혁명은 네트워크 연결의 고속화로 시작되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중복을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 인터넷이 보급되었고, 실물 거래가 온라인을 통해 컴퓨터에서 일어났고, 사람이 그 위에서 인간 관계를 쌓기 시작했다. 컴퓨터는 연산 도구를 넘어서 개인적인 실제 세계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도구가 되었다. 모두가 네트워크에 연결된 컴퓨터를 손에 하나씩 들고다니는 스마트폰 시대가 되었다. 스마트폰의 보급은 정치 및 경제의 모든 현상을 초연결 아래에 편입시켰다. 2016년의 하룻동안에 일어나는 소셜 플랫폼들에서의 정치적 의사 교환의 양은 1996년의 1년치 정치 담론 텍스트의 양을 능가한다. 거의 모든 오프라인 플랫폼과 온라인 플랫폼이 충돌과 결합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사회의 본질적인 부분이 이미 변했거나 변하고 있고, 우리는 그 전환기를 맞이하는 중이다.
반면 경제적 변화가 정보통신 분야의 격변을 유도하기도 한다. 포디즘과 컨베이어 벨트로 대표되는 20세기 초중반의 대량생산 패러다임은 정보통신기술과 결합되어 엄청난 시너지를 만들었다. 첨단기술 및 정보통신 산업이 다른 산업과 구분되는 두 가지 경제적 특징이 있다. 하나는 다른 산업에 비해 극단적으로 높은 초기 비용이고, 다른 하나는 특출한 발전 속도의 영향으로 빠르게 진행되는 감가상각이다. 이 특징은 초기에는 첨단기술 및 정보통신 산업의 약점이었다. 그런데 사회가 정보통신 의존적인 형태가 되면서 초기 투자에 드는 고비용을 감당할 수 있게 (또는 감내해야만 하게) 되었다. 엄청난 수요가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높은 초기 투자 비용에서 오는 손실을 이후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양산 비용에서 나오는 이윤으로 커버할 수 있게 될 때 까지의 긴 시간 간격을 높은 수요를 담보로 버틸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빠른 감가상각은 순식간에 초저가가 되어버린 연산 유닛을 엄청나게 싸게 보급하는 길을 열었다. 표준 운송 수단이 시속 50km에서 1000km로 20배 빨라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150여년이었지만, CPU가 16배 빨라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6년이다. 1992년 백만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하는데 드는 비용은 222달러였지만 2012년에는 0.06 달러가 되었다. 그 결과 2000년의 개인용 컴퓨터에 들어가는 대표적인 데스크탑 CPU 였던 1000여 달러의 Pentium 3 데스크탑의 속도보다 2012년에 출시된 35달러의 교육용 미니 컴퓨터인 라즈베리 파이 1세대에 들어가는 AP의 속도가 MIPS 기준으로 약 2배 빠르다. 모든 일상 제품에 CPU를 넣겠다는 인텔 CEO의 발언은 채 10년이 되기 전에 현실이 되는 중이다.
대량 생산과 빠른 발전 사이클의 결과인 연산 및 저장 자원의 저비용화는 초저비용의 하드웨어 플랫폼 및 클라우드 스토리지, 오픈소스의 공격적 확장으로 이어졌다. 동일한 정보기술 작업을 하기 위해 필요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자원 비용이 너무나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1985년 1기가를 저장하기 위한 비용은 8만달러 정도였다. 1995년에는 686달러였다. 2005년에는 0.75달러였고 2014년에는 0.03달러이다. 30년동안의 저장소 비용 변화를 비율로 따지면 천만분의 3으로 감소한 셈이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진행중인 사물 인터넷이나 기계학습 분야의 발전은 정보기술 분야에 드는 단위당 비용의 어마어마한 감소에 따른 경제성의 변화에 힘입은 바가 크다. 기계학습의 기반 알고리즘 중 하나인 인공신경망 이론은 이미 1990년대 말에 정립되었지만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베이시안에 기초한 데이터 기반 통계 이론에 눌려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인공신경망이 2010년대 중반에 와서야 빛을 발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알고리즘적 발전도 있지만) 하드웨어의 발전에 따른 비용 감소이다. 딥러닝 기계 학습은 어마어마한 연산 자원과 학습 데이터를 필요로 한다. 딥러닝 모델의 학습, 검증 및 실용화는 연산및 데이터 저장/처리 비용의 지수적인 감소로 인한 한계비용의 수렴 현상으로 인하여 가능해졌다.
인공신경망 기반의 기계 학습은 사회적 영향 측면에서 다른 정보통신기술과 구분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현재까지 IT 기술이 오프라인 경제 활동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는 자원 분배의 최적화와 오프라인 사업에서의 (판매 및 중개업을 포함한) 연결성 변화의 두가지 카테고리로 정리할 수 있다. 인공신경망 기반의 기계 학습은 여기에 더하여 특유의 유연성 및 가소성을 기반으로 지금까지 인간이 주도해 온 3차 서비스 산업 전반에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특히 기계 학습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 줄 것이라 기대하는 전문가 시스템 분야는 정보통신기술이 기존에 영향력을 발휘하던 최적화및 연결성 제공 카테고리를 넘어 인간을 대신해 오프라인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시발점으로 여겨지고 있다.
기술이 사회를 선도하고, 사회가 기술을 바꾸는 꼬리물기의 구조 끝에 정보통신 기반구조 비용이 엄청나게 감소한 시대다. 그 결과 우리는 자판기가 매대를 대신하기 시작한지 130여년만에 자판기의 후손들과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 후손들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할 필요는 없겠다. 상상하다 보면 어느새 만나고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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